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문단 편집) === 바익당 강 전투 === 원나라 군을 지휘하던 정붕비와 타쿠는 토곤을 호위하며 배를 타고 길을 뚫으려 했지만 결국은 지속적으로 방해를 받아 결국 반끼엡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호위함이 없는 우마르의 함대 역시 계속해서 쩐 함대에 의해 요격당했고 1288년 4월 8일이 되어서야 지아강(價江)에 들어갈 수 있는 쭉동(竹洞)에 다다르게 되었다. 하지만 쩐의 함대는 원나라의 함대가 지아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버렸고 결국 우마르의 함대는 바익당 강(白藤江)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쩐 군이 말뚝을 잔뚝 박아둔 상태였다. 쩐의 군대는 장껜산(長涇山)에 주둔하고 있었고 수군은 바익당 강과 연결된 다른 강에 숨겨두고 우마르의 함대가 진입해 들어오면, 곧바로 오른쪽 측면을 공격한 뒤, 연이어 다른 병력이 왼편을 공격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1288년 4월 9일 오전, 원나라의 함대는 바익당에 진입했고 쩐의 함대가 추격해오는 것을 보았지만 강 바닥에 박힌 말뚝에 걸려 멈춰서고 말았다. 곧바로 쩐의 군대가 사방에서 밀려오기 시작했다. 사령관인 쩐 구옥뚜안은 물론이고 황제인 쩐 인종까지 일군(軍)을 맡아 진격해 왔다. 특히 쩐의 장수 응우옌 호아이(阮 蒯)는 쩐의 금군이던 타인즉(聖翊)을 지휘하며 원나라의 배들을 직접 공격했다. 거기다 원나라 함대에 패배해 달아나는 척 하던 배들은 어느새 원나라 해군이 빠져나갈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다. 쩐의 군사들은 각 강의 지류에서 일렬로 정렬한 뒤 돌과 화살을 퍼부었고 동시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선박들을 보내 원의 함선 사이로 보내버렸다. 원나라 군에서는 반섭, 유규, 우마르, 장옥, 석례기(昔例基) 등의 장수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반격을 명령했다. 반섭은 서둘러 병사들을 상륙해 장껜산을 점령, 군대가 쉴 수 있는 높은 곳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반섭의 군대는 산을 확보하기도 전에 반격을 받아 다시 강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하필이면 물때가 썰물인 시점이라 이 무모한 작전으로 인해 더 많은 함선들이 파손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말뚝에 막힌 배들은 기습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말뚝의 범위 안에 없는 배들 역시 도망가는 척하던 쩐의 함선들이 길을 틀어막은 바람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원나라의 장수들은 대부분 퇴각하지 못하고 사로잡히게 되었다. 오후가 되자, 원나라 군은 사실상 전멸했고 장수 중 장옥은 결국 혼잡한 상황에서 벌어진 폭동으로 사망했고 우마르, 석례기, 반섭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지만 잡히지 않으려 물에 뛰어 들었으며 이천우(李千右)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원나라의 해군은 거의 궤멸되어 6만의 군사가 죽거나 포로로 잡혔고 수많은 배가 침몰했으며 400척 이상의 전함이 쩐 군대의 손에 넘어갔다. 우마르는 결국 부상이 심해졌는지 붙들리긴 했으나 쩐 성종의 배로 옮겨졌고 직급 높은 대장이라 그런지 나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